추천 가젯
- 공유 링크 만들기
- X
- 이메일
- 기타 앱
삼국지에서 조조가 공공의 적이 된 이유
삼국지에서 조조는 대표적인 악역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조조가 이전 악역인 동탁, 이각, 여포와 같이 순수 악인 인물들과는 다르게 입체적인 악역입니다. 이른바 악인 조조가 있는 반면에 영웅 조조의 요소가 있다는 뜻이죠. 오늘은 조조가 왜 악역이지만 제 생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주 대학살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민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을 학살한다는 건 폭군의 증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에게 폭정을 하지 않더라도 날씨만 안 좋으면 임금이 원망받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조조는 서주의 주인인 도겸의 병사들에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조조는 당연히 서주를 차지하여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엔 서주를 손에 넣을 수 없었고 죄 없는 백성들에게 화풀이성 학살을 한 것입니다. 백성들만 죽인 것이 아닌 그들이 키운 가축들까지 모두 죽여버렸습니다.
실제 역사서 정사 삼국지에 주석을 단 배송지는 이때를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남녀 수만 명을 구덩이에 넣고 파묻어서 죽이니 이에 따라 강물이 흐르지 못했다. 그뿐만 아니라 닭이나 개도 모두 없앴기 때문에 폐허가 된 곳에는 다신 그곳에서 행인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사람의 목숨이 하찮게 여겨졌던 고대 중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민가에 불 지르고 백성의 재물을 약탈했다는 기록도 굉장히 많고 적군의 군사들을 사로잡아서 구덩이에다 모조리 생매장한 항우의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항우의 경우에는 일반 백성이 아닌 군사들을 생매장했던 것이고 일부 적국 도시 백성들에게 재물을 수탈하거나 가혹행위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시간에 조조처럼 여러 구역의 백성들 그들이 키운 가축들을 깡그리 쓸어버린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서주 대학살은 그 당시에 백성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그로 인해 조조를 피해서 남족으로 이주해 온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제갈량도 원래 서주 사람인데 조조를 피해 형주까지 내려왔습니다. 조조와 반대로 행동했던 유비에게 민심이 쏠리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유비가 형주를 떠날 때 형주 백성들 대부분이 유비의 뒤를 따랐습니다.
소설 삼국지의 주인공이 유비인 이유와 우리가 본받을 점
2. 한 황실에 대한 압박
오늘날에도 정통성이라는 건 절대 무시하지 못합니다.
정통성 : 어떤 사회에서 있어서 특정 정치체제, 정치권력을 정당한 것이라 여기고 허용할 수 있게 하는 논리적이고 심리적인 근거 ( 나무위키 출처 )
정통성에 대한 아주 쉬운 예를 들면 선거로 당선되는 정치인을 들 수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대통령, 시장, 국회의원은 국민의 투표로 임명되기 때문에 정통성이 인정되고 국민을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에 권위 또한 막강합니다.
현재도 이런 정통성에 힘이 실리는데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하물며 황제라 불리는 이들은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이라 불렸는데 그 정통성은 말할 나위도 없죠.
한 황실의 권위가 떨어진 후한말에도 군웅들은 한 황실이 멸망되는 걸 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을 공격하려는 데 역적 토벌이라는 명목은 언제든 존재해 왔죠.
예를 들면 황제를 시해하고 한나라의 수도였던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강제 천도를 했던 동탁이든 스스로 황제 즉위를 했던 원술을 살펴보면 각지에서 군웅들이 몰려들어 토벌하려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조조는 황제를 옹립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조조 자신의 권력은 점점 강화되기 시작합니다. 황제는 점점 조조의 꼭두각시가 되어가고 조조가 황제를 대신하여 조정의 대소사를 모두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경계한 황제의 외척들이 조조를 죽이려고 시도했지만 중간에 모두 탄로나면서 오히려 그들이 조조로부터 죽임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황제의 첩인 동귀비, 황제의 부인인 복황후와 그의 가족, 친척 3대가 모조리 몰살당합니다.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복황후와 그의 시종, 가족을 포함하여 총 200여 명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후에 조조는 아예 자신의 딸을 황제의 황후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더욱 황제를 고립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조조가 사망 후에 결국 한 황제는 폐위되고 조조의 아들 조비가 제위에 오르게 됩니다.
3. 주변 사람을 자기 이득대로 살해
위에서 이야기했듯 조조는 자신의 이득을 위해선 남의 목숨을 해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몇 가지를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 동탁의 암살이 실패 후 조조는 아버지의 친구인 여백사의 집에 머물렀다. 여백사가 자신을 죽이려고 오해한 조조는 여백사 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리고 한 명언 "내가 천하를 배신하더라도 천하는 나를 배신하면 안 된다."
- 원술을 정벌할 때 군량미가 떨어지자, 군량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군량미를 빼돌렸다는 누명을 뒤집어씌우고 사형시킨 사건
- 조조는 위에서 이야기했듯 주변인들에게 암살 시도를 많이 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누가 가슴 속에 칼을 숨기면 몸이 떨린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자, 자신의 시종에게 가슴에 칼을 숨기고 온 후에 나를 죽이려고 했다고 거짓으로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신이 포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시종이 조조의 말을 믿고 그의 말대로 하자 약속을 어기고 바로 참수해버렸습니다.

댓글
댓글 쓰기